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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여행기 (절망의 시대, 사람의 길을 묻다!)
맹자여행기 (절망의 시대, 사람의 길을 묻다!)
저자 : 신정근
출판사 : H2
출판년 : 2016
ISBN : 9788989884910

책소개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으로 친숙한 신정근 교수의 신작 『맹자여행기』. 저자는 맹자의 흔적을 따라 여행하면서 텍스트 《맹자》에는 없는 맹자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박제된 《맹자》가 아닌 살아 있는 맹자를 만나는 즐거운 여행으로 우리를 이끈다. 초행길의 여행자가 참고할 만한 숙소나 현지의 특색 음식은 덤이다. 이 책은 여행과 고전의 만남이라는 흔치 않은 형식의 인문서 혹은 여행기이다. 저자의 말처럼 ‘한 도시에 남아 있는 사상가의 유적과 유물에 관한 모든 것’을 밝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맹자, 세상을 뒤집다.

맹자는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한 제자백가 중의 한 명이다. 성인聖人 공자를 이어 유학의 초석을 쌓은 아성亞聖이며, 사람은 본디 선한 존재라고 주장한 사상가다. 그리고 그에게는 홀로 자식을 키우며 세 번 이사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 사실들은 ‘맹자’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 그대로 끊임없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나가는 시대였다. 당시의 모든 제자백가들은 부국강병과 왕의 처세, 전쟁에서 이기는 기술 따위를 말하고 있었다. 그때 ‘백성을 위한 정치’를 외친 오직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맹자다.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고, 군주가 가장 가볍다.”

“왕보다 백성이 귀하다.”는 맹자의 일갈은 전국을 뒤흔들었다.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 왕에게 대항하는 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반역이었다. 하지만 맹자는 “왕은 백성을 보살펴야한다. 그런데 오히려 백성을 고통에 빠뜨린다면 더 이상 왕이 아니다. 그러므로 폭군은 몰아낼 수 있고 사직도 갈아엎을 수 있다.”고 선언한다. 이 과감한 논리는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계급혁명보다 무려 2천 년을 앞서, 맹자는 왕을 향하여 “당신도 잘못하면 목이 베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맹자는 훗날 권력에 의해 위험인물로 낙인찍히고 《맹자》는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맹자는 시대의 가치를 뒤집어, 백성을 신성한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은 혁명가다. 백성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는 ‘애민愛民의 정치’가 바로 맹자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맹자는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마음 ‘심心’을 인간을 이해하는 주체로 확립한 최초의 심리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전쟁으로 이득을 챙기기 위해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탐욕을 감추고 백성들을 기만하는 권력자의 행태를 꿰뚫고 있었다.
맹자는 치열하게 논쟁하고 싸웠다. 제자백가들의 표적이 되어 죽어가던 공자의 ‘인의仁義’ 사상을 살려내고, 무책임한 궤변과 거짓 논리로부터 시대를 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를 만난 제후들이 물었다.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맹자가 답했다. “백성들이 먹고 살 생업과 최소한의 생존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왕도王道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시면 됩니다.”
《맹자》는 낡고, 맹자는 오래된 사상가일 뿐인가? 맹자를 알기 전에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말할 수 없다.

‘나’를 깨우는 특별한 여행, 맹자를 찾아가는 길.

이 책 《맹자여행기》는 동양철학자 신정근 교수의 새로운 도전이다. 저자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포기해야하는 시대, 생존 경쟁의 벼랑 끝에 내몰리는 이 땅의 현실에 맹자를 소환한다. 맹자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그에게서 비롯되었고, 맹자가 걸었던 길이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이 책은 여행과 고전의 만남이라는 흔치않은 형식의 인문서 혹은 여행기이다. 그래서 어떤 고전 해석서보다 쉽게 《맹자》에 다가서게 한다. 저자는 텍스트의 틀에 갇힌 고전해석을 벗어나고자 했다. 직접 중국으로 떠나 맹자의 발자취를 따르며 유적들을 찾았다. 그리고 방대한 문헌의 기록과 자료를 더해, 맹자의 일생과 텍스트《맹자》에 얽힌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가득 풀어낸다. 낡은 철망에 갇힌 비석, 초라한 사당과 조야한 기념물, 무덤가의 나무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 그동안 감춰졌던 ‘맹자’라는 퍼즐의 빈 조각들이 하나씩 채워진다.
‘왠지 구부정한 공자와 달리 훤칠한 풍모, 논쟁이라면 져 본적이 없는 비유의 천재이며 문장가, 왕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담대함과 ‘너희도 그렇게 하라’며 부추기는 오지랖을 가진 남자, 자신의 원칙과 다른 행동을 했다고 이혼도 불사하는 고집불통이지만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고 고통 받는 백성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했던 남자.’
책의 여정을 따르다 보면, 맹자라는 한 사람의 초상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그리고 《맹자》의 통찰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전쟁과 생존경쟁에 내몰려 괴물이 된다 해도 그것은 사람의 본 모습이 아니다. 누구나 비탈진 곳에서는 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의 선한 본성을 기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가들이여!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라.”
지금이라도 이런 정치가라면 기꺼이 한 표 던져주지 않겠는가? 이 책은 박제된 《맹자》가 아닌, 지친 어깨를 토닥여줄 것만 같은 맹자에게로 우리를 초대한다.

《맹자》에는 없는, 맹자에 관한 모든 것

공자와 맹자는 중국 사람일까?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공자는 춘추시대의 노魯나라, 맹자는 전국시대 노나라에 속했던 주?나라 사람이다. 현재 중국의 산둥성 지역이다. 그들의 고향은 ‘공맹’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가깝다. 맹자의 고향은, 공자의 고향 취푸와 남쪽으로 인접한 쩌우청이다.
과연 맹자는 어떻게 성장 했을까? ‘맹모삼천지교’는 너무 유명하다. 흉내 내기를 좋아하는 호기심 많고 영민한 어린 맹자를 만난다. 그곳에는 아직도 마을 묘지가 있고 시장이 선다. 하지만 정작《맹자》에는 맹모가 없다. 맹모의 태교와 교육 그리고 아들과의 마지막 이야기까지, 그들의 인생역정은 한편의 드라마다. 맹자의 이혼 스캔들과 역적이었던 맹자의 조상과 맹자의 아버지 이야기도 있다. 어찌 보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맹자는 전국시대에도 환영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자와 함께 ‘유학의 쌍성’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오랜 역사의 무명 시절을 겪어야 했던 맹자가 ‘아성 맹자’가 되기까지 2천 년의 장구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맹자》의 최초의 주석서를 쓴 조기의 영화 같은 인생,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져가던 맹자를 살려 낸 공자의 후손 공보도, 맹자를 푸대접한 사마천의 《사기》를 만나고 《맹자》를 세계적인 사상서의 반열로 올려놓은 주희의 도학 혹은 성리학을 성찰한다.
또 저자는 곳곳에서 맹자에 관한 숙제를 풀고 있다. 예건대 맹자의 스승으로 알려진 ‘자사와 맹자의 관계’를 밝히며 제시한 한나라의 ‘박사관’에 관한 가설은 의미 있는 학문적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내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맹자의 유적과 유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공자성적도보다 무려 300년이나 앞선 《맹자성적도》는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부록에 전편을 실었다. 초행길의 여행자가 참고할 만한 중국 현지의 숙소와 특색 음식은 덤이다.

정도전 그리고 우리 곁의 맹자

그리고 썩은 고려 말, 권력의 암투에 밀려 유배지로 향하는 삼봉 정도전의 손에는 정몽주가 전해준 《맹자》 한 질이 쥐어져 있었다. “왕보다 백성이 귀하다.”는 맹자의 사상은 개혁에 실패하고 절망하던 정도전에게 혁명의 꿈을 주었고, 그 꿈은 조선이라는 나라로 실현된다. 결국 정몽주와 정도전을 한 길에 세운 것도, 그들의 운명을 가른 것도 맹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개국 후 정도전을 참살한 이방원이 지은 창덕궁의 정전이 ‘인정전’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조선에서 맹자의 위상을 실감하게 된다. 맹자는 권력을 향한 욕망과 이해타산으로 가릴 수 없는 보편의 가치, 사람의 가치를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식과 허균, 정조와 정약용까지 모두가 그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호연지기, 오십보백보, 조장, 조심, 방심...’ 모두가 《맹자》에서 비롯된 말들이다. 이렇게 맹자는 바로 우리 곁에 있었다. 너무 익숙해서 낯설어진 것일까? 아니면 나라는 부국강병하고 부자들의 곳간에는 재물이 넘쳐나지만 백성들은 고통 받는 이 땅의 현실이 저 옛날 전국시대와 닮아있기 때문일까? 우리는 맹자를 찾아 떠난 길에서 혁명의 꿈을 만나고 다시 오늘의 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2300년 까마득히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사상가들이 명멸하는 동안, 맹자 혹은 《맹자》가 아직까지 시퍼렇게 살아 숨 쉬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인문학의 뿌리는 고전에 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고전의 카피 혹은 설명서일 뿐이다. 하지만 고전은 그 방대함과 난해함으로 초학자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 《맹자여행기》는 특별하다. 여행의 여정 속에, 텍스트 《맹자》의 핵심 사상과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날줄과 씨줄로 얽혀 맹자라는 한 사상가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매력적인 책이다. 또한 과거의 공유자이며 미래의 동반자가 될 중국의 속살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처음 맹자를 만난다면 혹은 《맹자》만을 읽었다면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편집자 리뷰]

오랜 가뭄으로 깡마른 대지의 갈증은 끝이 아득한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 지평선의 끝에서 신기루처럼 모래바람이 일었다. 그 사이로 어슴푸레 여행자들의 수레가 보인다. 수 십대의 수레가 대지를 가로지르며 움직이자 새로이 모래바람이 일어나 흩어진다. 추나라를 떠나 양나라와 제나라를 거쳐 오는 맹자와 제자들의 행렬이다. 긴 여정의 끝이 어디일지 모르는 것은 제자들뿐만이 아니다. 맹자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있다. 살아온 세월만큼 먼 길을 돌아왔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가야할지 모른다. 저 멀리 수풀에서는 주인 없는 시체를 찾는 맹금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전쟁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더 많은 땅을 원하는 열국의 제후들은 스스로의 탐욕을 감추어 패도를 자처하였다. 죽어가는 것은 백성들이었다. 전쟁의 승패가 갈릴 때마다 왕과 제후들은 승전의 전리품을 백성들은 참혹함을 각각 나누어 가졌다. 나라마다 곳간에는 식량이 넘쳐났지만 굶주린 백성들이 일용할 양식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가올 전쟁을 대비한 군량미일 뿐이었다. 미처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버려진 시체들을 가는 길마다 마주했다. 고향을 잃고 떠도는 유랑민들을 거슬러 길을 재촉한 맹자의 일행은 또 다른 왕을 마주했다. 맹자를 맞이하는 왕들의 접대는 극진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물었다.
“정치를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맹자가 사유하던 시절 진리의 시작은 하늘과 땅이었다. 하늘은 세상의 이치이고 땅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현실세계였다. 현자를 자처하는 제자백가들은 하늘의 이치를 밝혀 인간의 삶을 설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오로지 맹자만은 땅위의 사람들을 살펴 하늘의 이치를 세우려 하였다. 맹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왕들이 그에게 구하는 답이 왕도가 아니라 패도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자는 다시 길을 떠났다.

수많은 학자들이 그의 텍스트를 연구하고 주(注)를 부기(付記)하였으나 아직도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주석은 회색으로 바래었으나 그의 언어는 푸르른 생명의 나무처럼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다. 백가(百家)들과 그 뒤를 이어 천가의 학설이 명멸하는 긴 시간동안 맹자의 텍스트는 움직이지 않고 시퍼렇게 자리를 지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 텍스트의 힘은 무엇일까?
책 밖으로 걸어 나와 쩌우청을 걷는다. 가는 길마다 맹자의 흔적을 만난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과 기념물을 만난다. 맹자가 꿈꾸던 세상을 찾아, 그가 걸었던 기나긴 여정을 따라 오늘 길을 떠난다. 맹자를 만날 수 있을까? 이 길의 끝에는 정말로 길이 있을까?

[미디어 서평]

맹자여행기 [연합뉴스] 2016.02.10.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가 고전과 여행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쓴 인문서 혹은 여행서다. 저자가 직접 중국을 여행하면서 '최초의 심리학자이자 혁명가' 맹자의 흔적을 찾았다. 맹자가 뛰놀던 고향, 그가 살던 고택(古宅), '맹모삼천지교'의 열정을 기린 '맹모삼천사' 등을 방문해 당시 맹자의 이야기와 함께 저자의 감상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냈다. 여기에 방대한 문헌의 기록을 더해 맹자의 초상과 사유를 또렷하게 그렸다.
저자는 맹자를 찾는 여행을 떠나기 전 프롤로그에서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던 맹자를 만나서 난마로 얽힌 우리 시대의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맹자여행기 [경향신문] 2016.01.29
동양철학자인 저자가 맹자의 흔적을 좇았다. 현지를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 묻고 들었다. 맹자는 늘 공자와 비교되며 늘 2인자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저자는 맹자의 사상이 공자에 뒤처질 이유가 없다며 절망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맹자의 사상은 더 의미가 각별하다고 믿는다. 저자가 새롭게 해석한 맹자는 ‘군주보다 백성이 귀하다’고 한 혁명가다.

맹자여행기 [조선일보] 2016.02.13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의 저자가 '동아시아 최초의 심리학자'라는 관점에서 맹자를 재해석했다.

“왕보다 백성” 외친 혁명가 맹자가 2인자로 남은 이유 [서울신문] 2016.02.13
동양철학을 압축해 ‘공맹’(孔孟)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공자와 맹자는 유가에서 가장 빛나는 별로 꼽힌다. 하지만 유가의 쌍성인 공자와 맹자가 항상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공자와 ‘논어’는 변함없이 유가의 중심에 있지만 맹자와 ‘맹자’는 그렇지 못하다. 사상 자체만을 놓고 봐도 맹자가 공자에 뒤질 이유가 없는데도 맹자를 공자 다음의 2인자로 치는 이유는 맹자의 혁신성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동양철학자 신정근 교수(성균관대 유학대학원장)의 분석이다.
‘맹자여행기’는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등의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동양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 온 신 교수가 맹자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작정하고 낸 책이다. 책이 다시 해석한 맹자는 혁명가다. 맹자는 신분제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들고 나왔다. ‘무엇을 위해 나라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왕보다, 사직보다, 백성이 더 귀하다”며 백성을 신성한 절대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인간 마음의 뿌리는 선하다며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가장 먼저 마음(心)을 철학의 주제로 설정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주체로 확립한 심리학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런 맹자를 찾아 나선다. 공자의 고향인 산둥성 취푸(曲阜)와 이웃한 쩌우청(鄒城)을 찾아 맹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 맹모삼천의 유적이 있는 곳, 맹자가 생을 마감하고 묻힌 묘지와 그를 기리는 사당 등을 답사하고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성선설의 모태가 된 ‘맹모정’, 디즈니 만화영화 ‘뮬란’의 원형이 된 칠녀이야기와 유적지도 찾는다. 여정을 따라가는 동시에 ‘맹자’의 문장들과 간간이 고사를 소개하는 책은 여행과 고전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맹자는 춘추전국시대에도 환영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책에는 오랜 역사의 무명 시절을 겪어야 했던 맹자가 아성 맹자가 되기까지 최초의 주석서를 쓴 조기의 영화 같은 인생,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던 맹자를 살려낸 공자의 후손, ‘맹자’를 세계적인 사상서로 부활시킨 주희의 성리학에 대한 성찰이 이어진다. 조선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은 정몽주가 전해 준 ‘맹자’를 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설계도를 그렸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600년 조선의 역사에 맹자의 사상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서문에서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던 맹자를 만나 난마로 얽힌 우리 시대의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백성을 우러른 혁명가' 맹자를 찾아서 [내일신문] 2016.02.12.
지난해 중국 산동성 쩌우청(鄒城)의 맹자 사당 '맹묘(孟廟)'를 찾았을 때 들었던 첫 느낌은 '2등의 설움'이었다. 마침 돌풍과 폭우로 맹묘 내 나무들이 송두리째 뽑힌 탓도 있지만 사당의 규모가 애초 취푸의 공자 사당 '공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맹자의 위패를 모신 아성전(亞聖展)이 수리중이라 아쉬움을 더했다.
이 갈증을 해소시켜 준 책이 나왔다. 동양철학자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가 쓴 '맹자여행기'가 그것. '맹자를 쫓아가는 길'이라는 의미의 '追孟子之旅(추맹자지여)'라는 한자 부제까지 붙였다.
신 교수도 맹자의 '2등의 설움'에 주목한다. '공맹'은 공자와 맹자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지만 사실 공자 다음의 의미라는 것. '응답하라 1988'식으로 표현하면 '언제나 언니 보라에 치이는 덕선이' 쯤 될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맹자는 지금도 우리 속에 살아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오십보백보, 조장(助長), 학교, 호연지기, 측은지심 등의 출처는 맹자다. 조선 성리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단(四端) 인의예지도 다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맹자여행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최초로 맹자의 주석서를 남긴 후한시대의 조기, 맹자를 사서의 경전으로 끌어올린 주희 등 역대 유학사에서 맹자의 위치도 함께 정리한다. 뿐만 아니라 맹자와 관련된 설화나 맹자 사당에 걸린 편액 등을 학자다운 박식함으로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쩌우청의 잘만한 곳과 먹을거리를 소개해, 여행기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조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TV드라마 '정도전'을 흥미 있게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들고 '맹자여행' 가기를 한번 권한다. 정도전이 맹자의 사상에 입각해 조선을 설계했다는 것, 그리고 그 맹자의 기개 때문에 조선의 선비들이 서슬 퍼런 임금의 권력 앞에서도 '아니올시다!'라고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권력자들이 먼저 맹자여행을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쩌우청 곳곳에 흩어진 맹자의 자취를 걸어보며 '백성이 귀하고, 임금이 가볍다(民爲貴 君爲輕)'는 맹자의 사상을 가슴에 담고 온다면 정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게 아닌가.

맹자의 고향에서 직접 보고 느낀 그의 철학 [서울경제] 2016.02.12.
2,300년 전 사람인 맹자나 그의 언행을 기록한 책 '맹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확실히 잘 안다는 사람도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맹자뿐만이 아니다. 공자나 노자, 주자 등 동양사상의 주요 인물도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는 책으로만 배웠고 읽었기 때문이다. 즉 텍스트로만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뼈와 살을 가진 살아있는 인간이라고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가 이번에 낸 '맹자여행기(追孟子之旅)'는 맹자의 삶을 따라가며 진면목을 찾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다. 저자는 맹자의 고향인 산둥성 쩌우청(鄒城)을 찾아 그의 흔적을 되짚는다. 맹자가 뛰어놀던 마당, 그가 살던 고택, '맹모삼천지교'의 열정을 기린 '맹모삼천사' 등을 방문해 맹자의 이야기와 함께 저자의 감상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냈다.
공자는 일찍이 "동산에 오르면 노나라가 작아 보이고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작아 보인다(登東山而小魯 登泰山而小天下)"고 했다. 그 가운데 '태산'은 너무나 유명해 기자도 알고 있지만 '동산'은 어딜까 궁금했는데 책의 저자는 이를 분명히 밝힌다. 동산은 맹자의 고향인 쩌우청 인근의 '이산'이다. 또 쩌우청은 공자의 고향인 취푸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아마 공자도 이산을 올랐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도 역시 동산, 즉 이산에 올라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느끼는 것이 이 책의 백미다. 덧붙이자면 이산은 해발 582m, 태산은 1,545m다.
저자는 사상가의 진면목을 알려면 텍스트 이해와 함께 현장답사가 필수라고 지적한다. 책에서 저자는 맹자가 거닐던 곳을 거닐고 지났던 길을 되짚으며 맹자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 갔는지를 몸과 마음으로 추체험하고 있다.
‘맹자 찾기’는 우리의 역사인식과도 관련돼 있다. 고려 말 '혁명가'인 정도전이 핵심으로 삼은 것이 책 '맹자'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던 맹자를 만나서 난마로 얽힌 우리 시대의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 책속으로 추가
맹자는 이익을 앞세우는 사회의 비극적 결말을 경고한다. 왕이 이익을 앞세우면 위아래가 모두 제 이익만을 다투어 결국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그 욕심은 신하가 왕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해쳐서라도 모두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맹자는 이익을 향한 욕망의 약탈성에 주목하고 있다. 서로 더 많이 가지려고 싸운다면 결국 남의 것을 빼앗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 세월호의 참사도 제 뱃속만 채우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맹자》에는 이익의 힘으로 흘러가는 시대와 그것에 맞서서 인의의 가치를 역설하는 맹자, 두 물줄기가 부딪치는 소리를 끊임없이 울려 내고 있다. 그 소리를 듣는다면 《맹자》를 제대로 읽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_76p

맹모삼천은 맹자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정작 《맹자》에는 보이지 않는다. 맹자의 어머니 장仗씨도
《맹자》에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맹모삼천의 이야기는 한나라 유향劉向의 《열녀전烈女傳》 〈모의母儀〉에 처음으로 보인다. 과거에 ‘열녀’를 다룬 책이 없었으니 ‘맹모삼천’이 사실이라도 수록될 만한 텍스트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또 모의는 ‘어머니들의 모범 또는 모범 어머니’라는 뜻이니, ‘맹모삼천’은 당연히 《열녀전》〈모의〉에 수록될 만하다. 하지만 이 《열녀전》의 편찬에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 한나라를 개국한 유방이 죽은 뒤 그의 아내 여비呂妃는 아들이 황제(혜제惠帝, 소제少帝)가 되었음에도 국정을 제 맘대로 농락하며 사실상 황제 역할을 했다. 사마천이 유방을 다룬 〈고조본기〉 뒤에 〈여후본기呂后本紀〉를 두어 여후를 황제로 취급할 정도였다. 후세의 평가가 엇갈리지만 중국의 3대 악녀惡女 중 한 명으로 불릴 만큼 여후의 전횡은 심각했다. 여후가 죽자 여성의 사회적 위상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대두되었다. 남성들은 여권女權의 신장이 아니라 여권의 억압을 제도화하고 내면화하는 교육을 실시하고자 했다. 이때부터 여성의 활발한 대외 활동과 사회 참여 등을 금기시하는 《열녀전》과 같은 ‘여성계몽서적’을 유행처럼 찍어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_156p

옛날에도 소문이 있고 풍문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맹자 이혼, 실상 알고 보니 경악!’ 정도의 제목이 달린 낚시 기사가 온통 인터넷을 장식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열녀전》에 등장하는 맹자가 이혼할 뻔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맹자가 방으로 들어갔는데 아내가 웃옷을 벗고 있었다. 아마 대낮에 일어난 일이리라. 발끈한 맹자는 아내가 예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출처出妻의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맹자는 아내를 다시 안 볼 생각을 한 것이다. 아내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이 느닷없이 당한 일이었다. ‘내가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내 방에서 옷을 벗고 있는데 그것이 무슨 허물이란 말인가?’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맹자의 아내는 시어머니에게 억울함을 토로하며 이런 명언을 남겼다.
“예부터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는 둘만 있는 방 안에서 따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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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도착해서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여 향전의 뜰을 밟는다. 주변이 고요해지고 멀리서 새소리가 들렸다 사라진다. 향전은 아담하게 잘 관리되어 있다. 향전 내부에 들어서면 맹자의 영정을 만나게 된다. 왠지 구부정하게 표현되는 공자와는 달리 훤칠하고 당당한 풍모이다. 잘생겼다.
향을 피우고 인사를 한 후 잠시 그 앞에 앉아 묵상을 했다. 일행들과 관리인도 그 모습이 흥미로웠는지 내가 일어설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늘 그렇듯이 책에서 본 맹자와 유적지에서 만난 맹자는 다르다. 책은 그의 사상에 집중하게 만들지만, 현장은 사람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맹자가 갔던 곳을 거닐면 ‘그가 무엇을 생각했을까?’를 곰곰이 따져 보게 된다. 맹자가 묻힌 곳을 오니 ‘그는 죽음을 앞두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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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이 맹자를 기록한다면 어디에서 다룰까? 결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맹자는 제왕이나 제후가 된 적이 없으므로 당연히 〈열전〉에서 다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마천은 《사기》전체로 보면 권74, 〈열전〉만으로 보면 제14편에서 맹자를 다룬다. 그 제목은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이다. 해당 페이지를 펼치기 전에, 우리는 〈맹자순경열전〉이니 당연히 맹자와 순자의 이야기가 중심이리라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 이런 기대는 완전히 무너진다. 〈맹자순경열전〉에는 맹자와 순자만이 아니라 같은 시대의 사상가 16명이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다. 맹자는 그저 18인 중 한 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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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는 《대학》의 삼강령과 팔조목, 《논어》의 인仁, 《맹자》의 사단四端과 성선, 《중용》의 중용中庸과 성誠, 이발已發과 미발未發 등에 입각한 유교의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이렇게 구축된 거대한 사상 체계가 ‘도학道學’ 또는 ‘성리학性理學’이라 불렸다. 맹자의 사상은 유교의 형이상학을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사단四端은 사람이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씨앗이다. 구방심求放心은 단에 주목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세속적 욕망에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다. 존심양성存心養性은 이런 사단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늘 지키고 본성을 거대한 흐름으로 키워 내는 것이다. 그리고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사단에 따라 살려는 열망이 최고조에 도달한 상태를 나타낸다. 이외에도 《맹자》의 숱한 개념은 도학 또는 성리학의 집을 짓는 데 기둥으로 쓰이기도 하고 처마로 쓰이기도 하고 지붕으로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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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송나라의 대부 대영지戴盈之도 10분의 1의 세금을 거두고 관세를 철폐하자는 맹자의 제안을 들은 모양이다. 그는 맹자의 기획을 갑자기 한꺼번에 실행할 수 없으니 차츰차츰 세금을 경감한 뒤에 순차적으로 실시하자는 의견을 냈다. 정책 담당자로서 사회적 충격을 줄이기 위한 나름의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맹자의 대답은 비수와 같다.
“가령 날마다 이웃의 닭을 한 마리씩 훔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도둑에게 ‘훔치는 일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도둑이 훔치는 숫자를 줄여서 한 달에 닭 한 마리만 훔치고 내년이 되면 그만두겠다고 대답했다고 하자. 말이 되는 소리인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한시라도 빨리 그만두어야지 어떻게 내년까지 기다린단 말인가?” _〈등문공〉 하8
맹자의 말솜씨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맹자는 대영지가 닭을 훔치는 도둑과 같음을 단박에 간파하고 있다. 대영지는 ‘사회적 충격’을 핑계로 정전제의 전면 시행을 미루자고 했으나, 사실 그에게는 ‘정책 변화로 인한 기득권의 충격’이 중요하지 가혹한 세금으로 인해 고통 받는 ‘국민의 충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에게서 나온 정책은 말만 요란했다가 나중에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기 십상이다.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도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 일인가.
_407~408p

동아시아에서 폭군들은 두 사람으로 인하여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자는 《춘추》에서 폭군이 죽으면 역사에 폭군으로 기록된다고 말했고, 맹자는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해 폭군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신이 폭군을 사후에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현실에서 폭군을 처벌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세계사에서도 드문 주장이다. 훗날 마르크스와 레닌이 사적 유물론에서 계급혁명을 주장하며 역사적 심판을 말했지만 맹자는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에 태연하게 왕을 상대로 “당신도 잘못하면 목이 베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실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주장하기 어려운 말이 아닌가! 맹자는 어떻게 이런 용기 있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맹자는 정치가 왕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가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독재정치에 맞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맹자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믿었기 때문에 ‘왕을 위한 정치’에 견결하게 맞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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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과거 훌륭한 왕들은 모두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서 차마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정치를 펼쳤다. 차마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정치를 한다면, 천하를 다스는 것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쉽다.” 〈공손추〉 상6
정도전은 고려가 사람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니 새로운 나라 조선은 사람을 살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맹자가 있다. 조선의 헌법 제1조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자는 맹자의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즉 인이다. 그 마음을 바탕으로 정치를 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조차 쉬운데 조선을 다스리는 것은 얼마나 쉽겠는가 ?
사람들이 ‘불인인지심’을 잊고 ‘인인지심忍人之心’을 좇기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기도 어렵고 천하를 다스리기는 더 어렵다. 이익이란 게 뭔가? 특히 배타적 이익은 결국 ‘나만 살면 그만이고 남은 죽어도 모른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이익은 사람을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존재로 몰아간다. 오늘날 대기업이 골목 상인과 경쟁해서 자기만 살고 골목 상인들은 죽이고 있다. 이것을 방치하는 것이 바로 ‘인인지정忍人之政’이고, 막는 것이 ‘不忍人之政’이다.
_432~433p

당시 정도전은 이방원과 현실 정치에서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방원이 승자가 되어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는 경복궁에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진한 피비린내가 그의 코를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태종 이방원은 즉위하자마자 이궁離宮을 세운다는 명분으로 창덕궁 공사를 실시하여 이듬해 완성한다. 그리고 창덕궁 정전의 이름을 인정전仁政殿이라 짓는다. ‘인정仁政’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인가? 다름 아닌 바로 맹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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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프롤로그/ 최초의 심리학자이자 혁명가, 맹자를 찾아가는 길
쩌우청의 맹자 유적지 위치와 교통편

1장 사맹四孟의 도시, 쩌우청鄒城을 가다 - 이산?山

01 손님이 되는 인문여행
02 공맹의 역사 전망대, 이산
03 쩌우청 기차역, 공자맹자탄생성지비孔子孟子誕生聖地碑
04 티에산 공원, 맹모교자상孟母敎子像
05 역사가 기록한 여자, 칠녀漆女 이야기

2장 맹자의 유년을 찾아서 - 맹자고리孟子故里, 맹자고택孟子故宅

01 맹가孟軻라는 이름의 비밀
02 맹가가 태어나 뛰놀던 고향
03 맹모정孟母井과 맹모지孟母池를 찾다
04 맹자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3장 아들만큼 유명한 어머니 - 맹모삼천사孟母三遷祠, 맹모림孟母林

01 맹모삼천사孟母三遷祠, 맹모는 두 번 이사했다
02 맹모사孟母祠, 자사서원子思書院, 자사사子思祠의 옛터
03 맹모가 영웅이 된 수상한 내력
04 맹모의 자식 교육
05 위대한 어머니의 안식처
06 맹모를 기리는 노래들

4장 인간 맹가에서 역사의 맹자로 - 맹림孟林

01 공자 후손, 맹자의 자취를 찾다
02 맹림, 맹자의 안식처
03 사마천, 맹자를 푸대접하다
04 조기趙岐, 맹가를 살린 사람
05 주희朱熹, 《맹자》를 살린 사람

5장 슈퍼스타 맹자를 만나는 곳 - 맹묘孟廟

01 맹자의 철학적 위상
02 세월이 빚은 판타지
03 또 하나의 숲, 비림碑林
04 하늘이 만든 우물 이야기, 천진정天震井
05 맹자의 영혼이 숨 쉬는 곳, 아성전亞聖殿
06 싸움닭 맹자
07 《맹자성적도孟子聖迹圖》
08 맹자의 또 다른 아버지, 자사子思
09 맹자의 효孝 이야기

6장 등불이 꺼지지 않는 부활의 터전 - 맹부孟府

01 맹부에는 누가 마지막으로 살았나?
02 몇 개의 문을 지나야 하는가?
03 지방 권부의 심장과 사적 공간
04 꽃이 반기는 정원을 거닐다

7장 혁명가 맹자

01 백성의 고통은 누구의 책임인가?
02 정도전, 맹자의 부활
03 조선을 관통한 맹자

에필로그
/삶의 현장에서 사상가를 만나는 ‘인문여행’을 떠나며

부록

·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맹자성적도》
· 어디서 잘까? - 쩌우청의 숙박
· 무엇을 먹을까? - 쩌우청의 특색 음식

참고문헌과 자료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