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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저자 : 이재갑
출판사 : 살림
출판년 : 2011
ISBN : 9788952216274

책소개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잔혹사『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지난 오늘의 일본 속에서 조선인 강제징용의 잔혹한 역사를 읽는 책이다. 15년에 걸친 일본 현지답사와 그 길 위에 쌓인 수많은 만남, 뛰어난 다큐멘터리 사진과 생생한 증언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의 쓰라린 역사를 되살려냈다.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는 강제 노동의 열악한 현장에서 스러져 간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바치는 치열한 기록의 결과를 만난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지난 오늘의 일본 속에서
삶과 죽음의 극단에 내몰렸던 식민지 조선인의 아픔을 읽다!

15년간 맨발로 뛰며 기록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잔혹사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유령처럼 우리 곁을 떠도는 식민지의 잔영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사라진 삶이 기록과 기억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한민국 대표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재갑의 감각적인 렌즈를 통해 되살아났다. 저자는 지난 1996년 2월부터 한국 내 일본 잔재 중 근대 건축물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 뒤 일본 내 조선인 강제징용과 그와 관련된 건축물에 대한 작업으로 범위를 한층 확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후쿠오카, 나가사키, 히로시마, 오사카,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일본 열도 곳곳을 답사한 저자는 군부대 진지, 탄광, 광업소, 댐, 해저탄광, 지하 터널, 비행장, 통신 시설 등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한이 서린 역사의 흔적에 분연히 뛰어들며 참혹했던 과거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장장 15년이 넘는 치열한 집필 기간 동안 작가를 독려해 온 것은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의 흔적을 찾는 작업이 결코 과거를 어루만지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믿음뿐이었다. 그가 서두에 밝힌 것처럼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하느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오늘 강제징용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열도에 깔린 철도 침목 하나가 바로 조선인 한 사람의 목숨일세!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운항하던 관부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넌 조선인들이 가장 먼저 경험했던 것은 거센 파도와 뱃멀미였다. 하지만 그에 이은 일본인 관리자의 폭언과 폭력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했다. 강제 연행된 조선인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항구와 바로 맞닿은 큰 창고로 이동했는데, 그곳에서 2~3일 정도 머문 후에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나 오키나와 등 각 지역으로 보내졌다. 강제 동원으로 끌려간 곳에서 감시와 차별,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들도 많았다. 후쿠오카 지역 41개 광업소에 배치돼 강제 노역에 시달린 사람만 해도 약 11만 명인데, 그 가운데서도 조선인 징용자에 대한 노동 착취가 가장 심했던 곳은 아소 탄광이었다. 아소 탄광으로 강제징용된 조선인 약 1만 명 중 절반은 굶주림과 중노동을 이기지 못해 숨지거나 탈출을 감행했다. 일본인 현장 감독은 수시로 노동자들을 폭행했는데, 이런 폭행은 석탄을 캐는 일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도망치는 사람이 많아지자 각 지역별로 감시초소가 생겨났고 이렇게 붙잡혀 오면 모진 고문을 당했다. 조선인 강제징용과 관련된 진실을 밝히는 사업에 평생을 바친 재일 한국인 배동록 씨는 이렇게 말하며 울분을 토했다. “일제강점기 재일 조선인의 삶은 한마디로 표현됩니다. 현재 일본 내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철도 침목 하나가 조선인 한 명’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강제 연행된 조선인들이 시모노세키 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항구와 연결된 큰 창고이다. 이곳에서 약 2~3일 정도 머문 후 일본의 각 지역으로 기차를 이용해 또 다시 이동한다. 창고 앞에 보이는 아스팔트길은 과거에는 바다였다. 매립 작업으로 인해 육지가 되어 당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야마구치 현 우베 탄광의 피어 굴뚝형 탄광 구조물. 이곳으로 물이 넘어와 당시 해저탄광에서 일하던 노동자 183명(이 중 조선인은 134명)이 수몰되었다. 그들은 아직도 바닷물 속에 있다. 미쓰이 기업이 운영했던 미이케 탄광의 미야노하라 수갱로로, 근처 형무소에서 재소자를 데리고 와서 강제 노동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구 미쓰비시 하시마 탄광은 바다 위에 만든 해저탄광 시설이다. 멀리서 보면 섬 전체의 모습이 마치 군함 같다고 해서 일명 쿤칸지마로 불렸고,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 동원되어 지옥과도 같은 노동에 시달렸다고 해서 광부들 사이에서는 지옥섬이라고도 불렸다. 나가사키 카타시마에 있는 항공 어뢰 발사 시험장과 선착장으로 현재는 건물 외형만 남아 있다. 러일전쟁을 대비해 축조한 이시하라 다케 포진지의 규모는 요새 수준이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었지만 언제든 재사용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구조물이었다.

일본 땅 어느 곳에 조선인의 한이 서리지 않은 곳이 있을까

재일 사학자인 박경식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1939년부터 1945년에만 약 100만 명이 넘는 우리 동포를 강제 연행했고, 군속(軍屬)으로 37만 명을 전선에 동원했다. 정든 고국과 산천, 부모와 처자를 떠나 이국땅에 끌려온 사람들은 결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열악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었다. 후쿠오카 현의 미이케 탄광,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사가 현의 이마리 가와나미 조선소, 오사카의 우토로 마을, 히로시마의 야스노 발전소, 오키나와의 도카시키 섬……. 저자의 발걸음에 맞추어 과거의 일본과 현재의 일본을 교차하며 걷다 보면, 이 낯선 일본 땅에서 조선인의 피와 한이 서리지 않은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라를 빼앗기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죽음마저 강요당했던 조선인들은 지금도 땅속에 이름 없이 묻혀 있으며, 그들의 희생과 죽음은 정확히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다. 직접 보고 듣지 않고서는 결코 절절히 느낄 수 없는 조선인 강제 노역자들의 아픔! 대한제국 말기, ‘병합’이라는 이름 아래 일본이 자행한 가장 큰 만행 중 하나인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진실을 조명하는 이 작업은 그래서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선상에서 바라보는 오키나와의 에메랄드 바다 빛은 아무런 말이 없다. 넓디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굉음과 함께 달리던 배는 어느덧 목적지인 도카시키 섬을 목전에 두고 있다.1년 내내 따뜻한 기온이 유지된다는 도카시키 섬이었지만, 강한 바닷바람과 심리적 압박 때문인지 몸이 무겁고 한기가 느껴졌다. 첫 번째로 답사할 지역은 오키나와 전쟁 당시에 판 참호가 있는 개인용 동굴이다. 숲이 우거지고 경사가 급한 좁은 길을 로프에 의지해 조심해서 내려갔다. 이윽고 도착한 곳에는 여러 개의 참호가 있었다. 한 명이 들어가 숨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토굴로, 육안으로 확인된 것만도 수십 개였다. 흙 속에 판 토굴은 미군의 공습이나 폭격에 대비해 안쪽으로 조금 굽은 형태로 보통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고 움직여야 할 정도로 작았다. 물이 흐르는 작은 냇가 양쪽으로 크고 작은 토굴이 있었다. 대장이 사용한 토굴은 규모도 컸지만, 더더욱 놀랐던 것은 이곳에 조선인 ‘위안부’가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두가 의아해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_pp.312-314

전투에 나간 로마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실제 전쟁과 훈련을 비교하게 된다. 자신들이 했던 훈련보다 실제 전쟁이 더 어렵다고 판단이 되면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것이고, 이는 전쟁의 패배로 이어진다. 그러나 로마 병사들은 그 어떤 대상을 만나서 전쟁을 치르더라도 혹독한 훈련 덕에 실제 전투가 쉽게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 무기보다 더 무거운 무기로 연습하고, 백부장들에게 실제 적들보다 더 혹독한 대우를 받으면서 이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전투가 제일 쉬웠어요.’ _pp.186-187

부유층이 원했던 것은 바로 무임승차였다. 일반 시민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로마의 패권이 확대되면, 부유층은 강국 로마의 일원으로 평화를 누리면서 부를 계속 축적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사실 무임승차를 원한 것은 로마의 부유층만은 아니었다. 로마의 평민들도 어떤 면에서는 무임승차를 원했다. 로마의 깃발 아래서 함께 싸운 라틴 시민권자와 이탈리아인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로마가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꾸면서 군대 내에서 보병의 역할과 장비의 구분이 사라졌는데도 전쟁의 전리품은 로마 시민들에게만 돌아가니 당연히 비로마 시민권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일반 평민들의 노력과 수고에 무임승차하려는 부유층 귀족들이나, 비로마 시민권자와 이권을 공유하지 않으려 하는 로마 시민들이나 별다르지 않다. _p.235

당시 도카시키 섬에는 200명가량의 조선인 ‘군속’이 강제 연행되다시피 끌려와 있었다. 이들도 예외 없이 핍박받고 억압받는 과정에서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었다. 이역만리에서 무자비한 폭력과 전쟁 앞에 희생되었건만 제대로 된 기록조차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활동하는 시민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최근 증언 채록집과 자료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당시 일본군은 평시나 전투시를 불문하고 조선인들에 대해 폭력적이었다. 특히 조선을 식민지화한 이후에 전쟁을 확대하며 조선을 전쟁 물자와 인력 보충의 근거지로 삼았다. 또 수많은 조선 여성들을 강제 연행하거나 돈을 벌게 해 준다는 감언이설로 속여 군 위안소로 데려갔다. 이곳 오키나와 일대에도 134곳의 군 위안소가 있었고, 배봉기 할머니도 그렇게 끌려온 사람 중 한 분이다. 이역만리에서 배봉기 할머니가 겪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_pp.3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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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프롤로그

제1장 후쿠오카 - 철도 침목 하나에 담긴 모질었던 삶의 애환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야하타 제철소
지쿠호 지역을 지배해 온 실력자, 아소 가문 이야기
사람의 힘으로 쌓아 올린 인공 산 보타야마
신세타령가가 울려 퍼지는 보타이시 묘지
온가 강은 그들을 알고 있다
지쿠호에서 만난 세 사람
조선 수탈을 위해 만들어진 석탄 역사 기념 박물관, 국가 등록 문화재가 되다
다가와 지역 최초의 조선인 탄광 순직자 순난비
일본 속에서 우리말을 지키다, 기타큐슈의 조선인 학교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곳, 오다야마 묘지를 말한다
기타미나토 마을에 숨겨진 조선의 흔적을 찾아
구조선 침략의 전진 기지 시모노세키를 걷다
조선인 134명의 유해를 품은 야마구치 현 우베 탄광의 비극
이름을 잃어버린 자들의 묘지, 미이케 탄광과 수인 묘지
작지만 의미 있는 승리, 오무타 마와타리 기념관을 찾아서
음울한 분위기로 박제된 미이케 항과 만다 갱
배동록 선생, 그의 어머니를 말하다

제2장 나가사키 - 원폭의 도시에서 만난 쓰라린 기억의 편린들

죽음의 섬 다카시마를 찾다
폐허로 남은 지옥섬 하시마
전쟁의 아픔이 배어나는 도깨비 섬 사키토
미쓰비시는 살아 있다
원폭에 깃든 서로 다른 얼굴, 원폭 자료관과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
비어 있지만 비어 있지 않은 곳, 오무라 항공기지와 해군공창
형기 없는 감옥 구 오무라 수용소와 오무라 공군기지
항공 어뢰 발사 시험장과 특공정 신요 훈련장 및 순국비
하리오 무선 전신탑과 사세보 요새
시간이 정지된 이마리 가와나미 조선소

제3장 오사카 - 여전히 계속되는 고난과 희망의 역사

조선인 마을 우토로에서 다시 찾은 희망
진심은 국경을 초월한다, 다치소 지하 터널
조선 침략의 상징 오사카 성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다
오사카 국제 평화 박물관에서 찾은 대한의 상징
제2의 우토로, 아파치 마을을 가다
나의 묘지이자 우리들의 묘지, 단바 망간 기념관

제4장 히로시마- 가장 낮은 곳에서 싹트는 평화

숨 가빴던 전투 요새, 구레의 2단 동굴 터널
어두운 기억 속에 묻힌 나가고 지하 터널 공장
인간 어뢰 가이텐 특공기지
야스노 발전소에서 기형도의 시를 떠올리다
조선인 유해가 던져진 인골(人骨)댐 이야기
원폭의 참상이 서린 도시 히로시마를 가다
히로시마 평화 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원폭 희생자 위령비와 평화 자료관

제5장 오키나와- 아직 끝나지 않은 기억과 기록

전쟁의 참상과 슬픔이 깃든 마부니 언덕의 평화 기념 공원
처절했던 역사의 현장 20호 동굴과 하에바루 문화센터
비밀스런 한(恨)을 간직한 섬 도카시키
미군 속에 오키나와가 있다
전쟁을 기념하는 평화의 장, 사키마 미술관
나를 이끌었던 숙명, ‘한의 비’를 발견하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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