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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코 페르미,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철저한 조사와 애정으로 그려낸 한 천재의 초상화)
엔리코 페르미,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철저한 조사와 애정으로 그려낸 한 천재의 초상화)
저자 : 데이비드 N. 슈워츠 지음|김희봉
출판사 : 김영사
출판년 : 2020
ISBN : 9788934992769

책소개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거인을
새로운 기록 자료와 독점 인터뷰로 만난다!
“페르미가 사망한 이후 출간된 전기 중에서 가장 철저하다!” _뉴욕타임스

이탈리아계 미국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평전. “페르미보다 더 많은 장소와 개념에 이름이 붙은 물리학자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리학에서 그의 업적과 유산은 광범위하고 절대적이다. 하지만 페르미에 관한 전기는 많지 않은데, 그가 남긴 기록이 전부 물리학에 관한 것뿐이라 개인적이고 내적인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전기 작가들이 그의 삶을 들여다보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 데이비드 N. 슈워츠는 많지 않은 기존의 자료에 더해 새로 알려진 사실들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엔리코 페르미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시기순으로 총 4부에 걸쳐 로마 출신의 어린 소년이 물리학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즉 페르미가 된 과정이 펼쳐진다. ‘물리학의 교황’으로 불렸지만 그는 또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고, 동료였고, 친구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태어난 시대의 포로였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페르미의 과학적 업적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과 더불어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거인의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거인을

새로운 기록 자료와 독점 인터뷰로 만난다!

“페르미가 사망한 이후 출간된 전기 중에서 가장 철저하다!” _뉴욕타임스

이탈리아계 미국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평전. “페르미보다 더 많은 장소와 개념에 이름이 붙은 물리학자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리학에서 그의 업적과 유산은 광범위하고 절대적이다. 하지만 페르미에 관한 전기는 많지 않은데, 그가 남긴 기록이 전부 물리학에 관한 것뿐이라 개인적이고 내적인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전기 작가들이 그의 삶을 들여다보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 데이비드 N. 슈워츠는 많지 않은 기존의 자료에 더해 새로 알려진 사실들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엔리코 페르미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시기순으로 총 4부에 걸쳐 로마 출신의 어린 소년이 물리학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즉 페르미가 된 과정이 펼쳐진다. ‘물리학의 교황’으로 불렸지만 그는 또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고, 동료였고, 친구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태어난 시대의 포로였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페르미의 과학적 업적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과 더불어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거인의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물리학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거인을

새로운 기록 자료와 독점 인터뷰로 만난다!

철저한 조사와 애정으로 그려낸 한 천재의 초상화



개인적인 생각을 거의 남기지 않았던 천재 물리학자를

복합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되살려낸 평전

이탈리아계 미국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평전. ”페르미보다 더 많은 장소와 개념에 이름이 붙은 물리학자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리학에서 그의 업적과 유산은 광범위하고 절대적이다. 스핀이 반정수인 입자를 일컫는 페르미온, 그러한 입자를 계산하는 방법인 페르미-디랙 통계, 페르미온들이 절대 0도에서 가지는 최대 에너지인 페르미 에너지, 페르미 에너지의 개념을 물질 속에서 표현하는 페르미 준위 등등 양자역학과 통계역학, 응집물리학, 핵물리학, 입자물리학을 망라하고 있다. 그뿐인가.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가속기가 있던 미국의 국립 연구소 페르미랩, NASA에서 2008년 발사한 페르미 감마선 우주 망원경, 시카고 대학교의 엔리코 페르미 연구소, 원자번호 100번인 원소 페르뮴,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과학 분야의 가장 중요한 상 중 하나인 엔리코 페르미상 등 그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붙인 대상도 많다. 물리학의 범위를 넘어서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을 논의할 때면 나오는 ‘페르미 역설’이나, 페르미가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비롯되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유명회사의 면접에도 이용되는 ‘페르미 해법’, 혹은 ‘페르미 질문법’ 등에도 페르미의 이름이 등장한다.

하지만 페르미의 삶에 관해서는 대중에게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데, 그가 남긴 기록이 전부 물리학에 관한 것뿐이라 개인적이고 내적인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르미에 관한 주요 전기도 그의 아내가 쓴 것(1954년)과 아주 친했던 제자가 쓴 것(1970년)이 전부라고 할 만큼 적었다. 저자 데이비드 N. 슈워츠는 페르미의 제자가 될 뻔했던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한 편의 글에 흥미를 느끼고, 많지 않은 기존의 자료에 더해 1970년 이후 새로 알려진 사실들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4년에 걸친 집필 끝에 엔리코 페르미를 복잡하고도 매력적인 인물로 되살려냈다. 시기순으로 총 4부에 걸쳐 로마 출신의 어린 소년이 물리학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사람’, 즉 페르미가 된 과정이 펼쳐진다. ‘물리학의 교황’으로 불렸지만 그는 또한 남편이었고, 아버지였고, 동료였고, 친구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태어난 시대의 포로였다.



“이 엔리코 페르미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파시스트인가요? 이 사람 뭡니까?”

맨해튼 프로젝트의 핵심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원

“그는 아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탈리아를 떠났다고 한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이다. 그의 동료들은 그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그의 지성에 크게 감탄한다. 그는 의심할 바 없이 파시스트다. 비밀에 관련된 일에 그를 고용하려면 훨씬 더 신중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비밀 사업에는 이 사람을 고용하지 말 것을 권장한다.”(270쪽)

1940년 8월 13일 자로 기록된 페르미에 대한 FBI의 최초 보고서 내용이다. 페르미는 1938년 노벨상 수상을 위해 스톡홀름으로 출국하게 된 것을 기회로 삼아 파시스트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다. 그런 페르미가 한동안 적국인 신분이었다는 것은 맨해튼 프로젝트 전체에서 가장 이상한 이야기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가장 민감하고 비밀스러운 군사 프로젝트에 이탈리아 국적의 파시스트 당원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클라우스 푹스 같은 스파이가 활동하기도 했고, 전후에도 맨해튼 프로젝트의 또 다른 주역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소련의 스파이로 몰아 청문회까지 열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FBI가 페르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페르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지만, 프로젝트에서 점점 더 중요성이 커진 군 장교들은 페르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시기에 페르미 부부는 자기들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집 지하실 바닥을 파서 현금이 든 깡통을 묻어놓기도 했다. 다행히 이후 그의 충성심이 심각하게 문제된 적은 없었지만, 새로운 조국에서 느꼈을 심리적 불안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책은 이렇게 건조한 기록밖에 남아 있지 않은 페르미의 주변을 샅샅이 훑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에 조명을 비춘다. 예를 들어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한 연구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그는 핵분열 폭탄의 가능성을 의심했고,(13장) 1939년 3월에 군대에게 핵무기의 가능성을 소극적으로 설명했으며,(14장) 1945년 초에는 폭탄 설계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초기 중성자 공급 장치’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매달렸다.(19장)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급행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하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한 페르미가 나름대로 열차를 세우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이후 수소폭탄 개발을 둘러싼 일련의 보고서에서 페르미는 “어떤 면으로 보아도 필연적으로 사악하다”며 개발을 명시적으로 반대했지만, 8개월 후에는 그 무기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는 그의 전후 활동 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대목인데, 그 이유는 여전히 수수께끼이지만 저자 데이비드 N. 슈워츠가 그려내는 페르미의 모습은 이 결정이,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순전히 과학적인 호기심만으로 이루어졌을 것 같지는 않다는 인상을 준다.(22장)



이론과 실험, 교육에서도 독보적이었던 마지막 사람

그리고 죽음과 유산

페르미가 물리학 이론과 실험 모두에 뛰어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페르미의 제자 제프리 추는 그를 “모든 것을 아는 마지막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론과 실험에 모두 뛰어날 뿐만 아니라 당대의 물리학에 관한 모든 것, 천체물리학에서 지구물리학까지, 입자물리학에서 응집물질물리학까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에는 물론이고 그가 살았던 시절에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 책은 여기에 더해 페르미의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부각한다. 특히 전후 시절을 그린 4부 ‘시카고 시절’에는 교육자로서 페르미의 탁월함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가르치는 일을 진정으로 즐겼는데, 전쟁이 끝난 뒤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그가 맡은 강의 수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전쟁 전부터 이름을 날렸고, 전후에는 더 유명해져서 마음만 먹으면 강의 의무를 최소한으로 질 수 있었는데도, 페르미는 학기마다 반드시 두세 강좌를 맡았다. 그는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절대로 짜증을 내지 않았고 오히려 한 번 더 설명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이처럼 모든 학생을 존중하고 그들의 열정을 이끌어냈기에 페르미는 ‘가장 사랑받는 물리학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어떤 물리학자도 죽은 뒤에 페르미처럼 애정 어린 헌정물을 받지 못했다. 시카고 외곽의 아르곤 연구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추억을 담은 두 장짜리 레코드 〈페르미에게 사랑으로〉와 캐나다 공영방송사 CBC에서 마음을 듬뿍 담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엔리코 페르미의 세계〉에 견줄 만한 다른 물리학자에 대한 헌정물을 찾는 것은 정말로 헛된 일이다.”(24쪽)

페르미의 죽음과 이 이후의 이야기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페르미의 동료였던 헝가리 출신의 수학자 스타니스와프 울람은 1954년 여름 파리에서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한다. 바로 몇 달 전에 있었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사건과 더불어 물리학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페르미는 두 번이나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르지, 나는 저 위에서 보게 될 거야.” 페르미는 이제 53세밖에 되지 않았고, 그다지 종교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때 이미 자기가 오래 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병원에서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두 달간 투병하다가 1954년 11월 28일 새벽에 사망했다. 여러 사람의 회고와 기록을 통해 저자가 보여주는, 죽음에 대한 페르미의 태도는 보는 사람을 절로 숙연하게 한다. “페르미는 드문 평정심으로 자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대개는 현실적이고 얼마간 비관적이었던 평소의 인생관 속에서 받아들였다. 페르미에게는 과학이 종교의 기능을 완전히 대신했다. 그는 살았던 것과 똑같이 죽었으며,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사색을 할 필요가 없었다. 페르미로서는 자기의 삶은 그의 비범한 정신이 꺼지는 순간에 끝나지만, 그의 업적은 계속 살아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했다.“(469쪽) 그가 떠난 뒤 이어지는 가족들과 동료들,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그의 과학적 유산들을 읽고 나면, 당신은 분명히 엔리코 페르미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질 것이다.



페르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한다.

트리니티 테스트에서의 간단한 실험: 1945년 7월 16일,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트리니티' 현장에 이상한 남자가 있었다. 폭발 직후 그는 수를 세면서 시간을 재기 시작했고, 주머니에서 종잇조각 한 줌을 꺼냈다. 머리 위로 팔을 뻗어 종잇조각을 든 채 시간을 재다가 폭발의 충격파가 도달하는 순간 떨어뜨렸다. 종잇조각이 날아간 거리를 측정하고 그는 폭탄의 파괴력이 TNT 10킬로톤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실제 폭발력인 18킬로톤과 꽤 근사한 수치였다. 그 자리에는 내로라하는 물리학자 여럿이 있었지만 누구도 이런 실험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래, 내가 기다리고 있었지.”: 페르미의 제자 중 나중에 엔리코 페르미상을 받은 아서 로즌펠드가 대학생 시절 기초 시험에서 1등을 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런데 페르미는 나중에 로즌펠드에게 시험 답안에 틀린 부분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사기가 꺾인 로즌펠드는 페르미에게 논문 지도교수가 되어줄 수 있는지 물었다. 페르미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내가 기다리고 있었지.” 60년이 지난 뒤에도 로즌펠드는 페르미의 대답을 인생의 정점으로 기억한다.

“절대로 필요 이상으로 정교하게 만들지 마라.”: 페르미의 딸 넬라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페르미가 만든 목재 가구는 기능적이지만 투박하고 멋이 없었는데, 아내가 보기 흉하다고 투덜대며 나가버리자 넬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필요 이상으로 더 정밀하게 만들지 마라.” 거칠어도 통하면 그만이라는 페르미 특유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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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추천의 글 / 8

서문 / 16



들어가는 글 / 21



1부 페르미 되기

1 신동 / 39

2 피사 / 61

3 독일과 네덜란드 / 74

4 양자 돌파구 / 91

5 도마뱀 사냥 / 102



2부 로마 시절

6 가정생활 / 113

7 로마 학파 / 135

8 베타선 / 154

9 금붕어 연못 / 169

10 마약 같은 물리학 / 192

11 노벨상 / 206



3부 맨해튼 프로젝트

12 신세계 / 219

13 원자 쪼개기 / 228

14 해군을 만나다 / 241

15 최초의 원자로 / 256

16 시카고로 가다 / 267

17 “우리가 요리하고 있어!” / 290

18 제논-135 / 305

19 메사에서 / 327

20 성스럽지 않은 삼위일체 / 355



4부 시카고 시절

21 시카고로 돌아오다 / 375

22 대중의 시선에서 / 408

23 특허 싸움 / 430

24 빛나는 교사, 사랑받는 스승 / 442

25 해외여행 / 454

26 집에서의 죽음 / 462

27 페르미의 유산 / 476



감사의 글 / 498

인용 출처 / 506

주 / 508

참고문헌 / 555

찾아보기 /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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